솔직히 저는 처음 연세대 수시 논술 기출을 펼쳐들었을 때 당황했습니다.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을 빅토르 위고의 영어 원문과 연결 지어 600자로 써내라는 요구가, 고등학교 교실에서 제가 가르쳐온 것들과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 새삼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방과 후 인문논술 심화반을 운영하면서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험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어디서 막히는지를 풀어보겠습니다.

문항구조: 연세대 논술이 쪼개지는 방식
연세대 인문논술은 1-1, 1-2, 2-1, 2-2 네 문항으로 구성됩니다. 제가 수년간 기출을 분석하면서 느낀 건, 이 네 문항이 각기 다른 사고 근육을 쓰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1-1부터 2-1까지는 주로 설명·평가 유형이 빈출됩니다. 여기서 설명·평가 유형이란 특정 이론이나 사례를 다른 관점의 제시문으로 읽어내거나, 그 타당성을 따져보는 방식입니다. 비교 유형이 간간이 섞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이 설명·평가 구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건, 긍정적 측면(플러스)과 부정적 측면(마이너스)을 양쪽으로 나눠 논점을 세우는 연습이 이 유형의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2-2번이 있습니다. 인문수리 문항이라 부르는 이 문제는 수학적 답 도출에 그치지 않고, 도출한 결과를 인문사회과학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처음 이 문항을 접한 학생들이 "이게 논술 문제예요?"라고 되묻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 1-1 / 1-2 / 2-1: 설명·평가 유형 중심, 600자 안팎(±10%) 분량
- 2-2: 인문수리 문항 — 수학적 도출 + 인문사회과학적 해석 결합
- 영어 제시문 포함: 원문 정확한 독해가 채점의 전제 조건
- 답안 구성: 제시문 언급(간략) → 본문 설명 3단 논리 전개
칸트철학: 교실에서 레미제라블을 읽는 방법
제가 직접 지도하면서 가장 오래 붙잡았던 문항이 바로 이것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일부를 발췌한 영어 제시문 [다]와, 칸트의 도덕철학을 담은 제시문 [가]를 연결해 설명하는 문제였습니다.
제시문 [가]의 핵심은 선의지(good will)입니다. 여기서 선의지란 도덕 법칙을 따르려는 순수한 의지를 뜻하며, 칸트는 오직 이것만이 무조건적으로 선하다고 봤습니다. 인간은 이익이나 쾌락, 두려움 같은 자연적 경향성에 끌리기 때문에, 도덕 법칙은 명령의 형식으로 강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칸트가 말하는 진짜 핵심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바로 의지의 자율(autonomy of will)입니다. 의지의 자율이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수립한 보편적 도덕 법칙에 이성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말하며, 칸트는 이를 통해 인간이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제 수업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막히는 지점이 바로 이 전환이었습니다. 영문 제시문 [다]를 번역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정작 "왜 혁명에 헌신하는가"라는 도덕적 동기를 놓쳐버리는 겁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접근하도록 했습니다. [다]에서 화자가 촉구하는 자유, 평등, 박애의 대의는 자신만의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보편적 도덕 법칙에 해당합니다. 이기심과 두려움이라는 자연적 경향성을 극복하고 희생과 헌신에 나서는 행위는, 칸트가 말한 의무 동기(duty motive)에 따른 행동입니다. 여기서 의무 동기란 결과의 좋고 나쁨이 아닌 오직 도덕 법칙을 따르려는 의지 자체에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br">그리고 [다]에서 "양심과 마음에 귀 기울여 헌신하는 열의"라는 표현은, 가의 관점에서 선의지가 발현되는 순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연결 고리를 스스로 발견하던 학생들의 표정이 제 논술 지도 경험에서 가장 보람 있는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교육장벽: 공교육 교사로서 느끼는 무력감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연세대 인문논술이 대학 수학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본래 취지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공교육 현장에서 정규 수업만으로 이 시험을 대비하는 건 명백히 한계가 있습니다.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은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나 윤리와 사상 교과에서 다루기는 합니다. 그러나 해당 개념을 영어 원문 텍스트와 연결 지어 600자 논증으로 벼려내는 능력은, 정규 교육과정이 목표로 삼는 학습 성취와는 다른 층위에 있습니다. 이 간극이 수험생들을 대치동을 비롯한 고액 논술 사교육 시장으로 밀어 넣는 구조적 원인이 됩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대입 논술고사 실태 분석 보고서에서도 논술 준비에 사교육을 활용하는 비율이 70%를 넘는다는 통계가 제시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저는 이 수치를 볼 때마다, 공교육 교사로서 깊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대학이 변별력 확보라는 명분 아래 고교 교육과정의 연계성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복합 다면 문항을 출제하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이 무력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고난도 제시문 독해와 인문수리적 사고력이 대학 수학에서 실질적인 역량이 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논술고사가 진정한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려면, 성실히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라면 사교육 없이도 논증을 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시문 난도와 문항 구조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연세대 인문논술 답안 분량은 얼마나 써야 하나요?
A. 문항별로 600자 안팎(±10%)이 기준입니다. 540자에서 660자 사이가 안전한 범위입니다. 분량을 채우는 것보다 논리의 밀도가 우선이지만, 너무 짧으면 논증이 끊기는 인상을 줄 수 있어 분량도 함께 관리해야 합니다.
Q. 영어 제시문이 나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요?
A. 단어 하나하나를 번역하려 하면 오히려 글의 맥락을 놓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권하는 방식은 먼저 단락별 핵심 주장을 파악하고, 도덕적 동기나 태도를 묻는 문장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연세대 영어 제시문은 문학 텍스트에서 발췌되는 경우가 많아, 서사 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를 읽어내는 연습이 핵심입니다.
Q. 칸트 윤리학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려면 어디서부터 잡아야 하나요?
A. 선의지, 자연적 경향성, 의지의 자율, 의무 동기, 이 네 가지 개념의 정의와 상호 관계를 먼저 잡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배경지식을 암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개념들을 특정 텍스트에 적용해 설명하는 연습을 반복해야 논술 답안으로 연결됩니다. 고교 윤리 교과서의 해당 단원을 기초로 삼되, 원전 발췌문을 함께 읽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Q. 인문수리 문항(2-2번)은 수학 실력이 중요한가요?
A. 수학적 계산 자체보다 계산 결과를 인문사회과학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수식을 정확히 풀었더라도 그 의미를 사회 현상이나 인간 행동과 연결하지 못하면 감점 요인이 됩니다. 수학과 인문학 양쪽의 언어를 함께 쓸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결론
연세대 인문논술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건 실력 부족 때문만이 아닙니다. 제가 논술 심화반을 운영하면서 거듭 확인한 건, 이 시험이 요구하는 핵심 능력이 단순 지식 암기가 아닌 철학적 개념을 도구 삼아 텍스트를 꿰뚫는 사유 훈련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의지와 의지의 자율이라는 칸트 개념 틀을 손에 쥐고 레미제라블의 혁명 장면을 다시 읽으면, 텍스트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만 이 사유 훈련이 공교육 정상 범위를 한참 벗어난 고액 사교육 없이는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문항 구조를 이해하고 개념 틀을 먼저 세우는 것, 그리고 그 한계를 직시하는 것, 두 가지 모두 논술 준비의 출발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